인도,約束의 땅인가? 아니면 危險地帶인가?(2)
(05년6월2일자에서 연결)
밋타루(세계 1위 철강회사 회장)가 돼라! 최근 10년 사이 약진하고 있는 인도계 IT기업이 돼라! 모두 스케일이 크고 전세계를 상대로 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집단들뿐인 것이다. 나는 이따금 인도에 발길을 옮기지만 그때마다 신규 사업의 판로 확장 공세를 받는다. 그것도 20살만 젊었다면 꼭 해보고 싶다 라고 생각이 드는 플랜이 많다.
이것은 5년 전의 이야기 이지만 문바이(地名)에서 작은 법률사무소를 개설하고 있는 인도인 변호사가 나에게 와 특허 신청의 BPO(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을 하고 싶으니 일본의 특허에 관해 영어로 번역해 주는 곳을 소개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자세하게 물어 보았더니 그는 先進諸國 모두를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특허의 중요도를 보고 등록해야 하는 나라를 어드바이스 하고 고객을 대신하여 모든 사무를 대행한다 라고 하는 서비스 이다.
마찬가지로 藥事 신청의 BPO를 성공 시키고 있는 인도인도 있다. 이전에 유럽계의 제약 회사의 대부분이 이용하고 있지만, 클라이언트에 아직 일본 기업은 없는 것 같다. 이것은 타타 재벌 회장인 라탄.타타로부터 들은 이야기 이지만,(그와는 IBM의 어드바이져리.보더에서 함께 일했다) 루후토한자 항공은 10년전부터 이런 방식으로 인도를 사용하고 있다 라고 한다. 예를 들면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카운터에 항공권을 정규 요금으로 구입한 사람이 와서 공석이 없는가? 라고 물어오면 바로 컴퓨터로 조사해 본 결과 滿席 였다. 그러나 이 고객을 놓쳐 버리면 통상 3인분의 이익을 잃어 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무언가 해보고 싶다.
이 경우는 바로 인도에 연락 한다. 프랑크푸르트의 카운터에서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사이에 인도에서는 모든 좌석을 재검토 해 저쪽을 채워보거나 이쪽을 채워보거나 취소 대기 순번을 뒤 업거나 해서 결국은 어떻게 해서든 空席을 만든다. 그러면 5분도 기다리지 않고 <찾았습니다>라고 하는 회신이 돌아 온다.
실은 이것은 수작업 입니다만 컴퓨터는 리니아.프로그램(경계 조건을 결정한 단순한 선형 계획법)이기 때문에 이 손의 까다로운 작업을 처리할 수 없는 것이 적지 않은 것이다. 물론 유럽의 스태프에 이런 유사한 것을 시키면 터무니 없는 경비가 든다.
<케미컬.아브스토라쿠도>는 알고 있는가? 각 화학 분야의 특허와 논문의 초록 등을 정리한 색인집이다. 방법도 없을 정도로 방대한 테이터가 담겨져 있지만 이것은 인도에서 계속 만들어져 왔다. 영어의 문헌을 모두 읽고 초록을 작성하거나 알파벳 순으로 나열하거나 하는 그 편집작업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또한 인도에는 할리우드를 풍자해서 <보리우드>라고 불리우는 엔터테이먼트 산업이 존재한다. 인도가 영화 산업에서 번창한 것은 대부분이 알고 있는 것이지만, 수년 전까지는 종교상의 제약으로부터 피부를 대담하게 노출 시키는 것 같은 장면은 법으로 금지 되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현재 아메리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가 팔리기 시작하고 있지만 IT 산업과 마찬가지로 아메리카의 게임 산업에 인도.시프트가 일어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또한 애니매션도 영화산업의 근접 분야이고 지금은 CG가 당연하기 때문에 그들의 전문 분야와도 곁친다. 거기에 인도인의 지적 경쟁심은 굉장하기 때문에 일본勢은 멍청하게 있을 수 없다.
이것들은 모두 노동 집약적이지만 지식 집약적이기도 한 작업이기 때문에 이것이야 말로 인도인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인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중국과는 다르게 인도의 제조업은 노동 집약형이 아닌 별안간 고도 기술분야로부터 스타트하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IT의 강점을 활용하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일 것이다.
<인도 躍進의 理由>
Q. 지금 인도라고 하면 <세계의 IT 基地>를 연상 하지만, 현재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대해서 어떠한 전망을 하고 있습니까?
大前: 우선,방가로르 小史를 간단하게 거슬러 올라가 보면, 59년부터 62년에 걸쳐 中印 전쟁이 있었다. 결과는 중국의 압도적인 승리 였지만 이 전쟁을 계기로 중국과의 국경 부근은 위험 지대로 변했기 때문에 군사 시설을 어딘가로 이전 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때 데칸 고원의 남쪽에 있는 카루나타카州 방가로르가 선택 되었다.
그러나, 印中의 분쟁은 얼마 안 있어 유명무실하게 되어 – 실제 85년에 라지부.간디 수상의 訪中이 있고 2003년 6월 아타루.비하리.바지파이 수상과 溫家寶 수상과의 사이에 <全面 協力 宣言>이 調印 되었다 – 방가로루의 군수 산업은 쇠약해져 갔다. 당연히 많은 사람이 직업을 잃었다.
이러한 때 마침 IBM을 비롯한 몇 개의 미국 기업이 그들에 컴퓨터.프로그램의 일을 발주 하기 시작 했다. 이것이 하나의 계기 였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인도라고 하는 나라는 (넬.쟈우하라르와 마하토마.간디에 의한) <넬=간디 주의>라고 하는 사회주의적인 <富의 分配 論理>가 주류이다. 그러나 <분배하려고 해도 누군가가 富를 창출하지 않는 한 그것은 무리이다>라고 생각한 인물이 이 방가로루에 등장한 것이다. 그야말로 인도 IT 기업의 최대 재벌인 인포시스의 창업자인 N.R.나라야나.무루티(현재는 회장)이다.
인포시스는 그와 7인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 의해 81년에 – 그 당초는 푸네 라고하는 곳에 있었고 83년에 방가로르에 이전해 왔던 것이지만 – 설립 되었다. 당시 그 자본금은 단돈 250달러 였다.
그러한 사소한 자금밖에 없었던 것이지만 무루티는 <프로페셔널의, 프로페셔널에 의한,프로페셔널을 위한 조직>으로 하는 것을 창업 이념으로 하는 한편, 방가로루를 하나의 전자 도시로 발전 시키겠다 라고 하는 운동을 지도해 왔다.
원래는 공산주의 운동에 참가해 왔었지만 어느 때인가 <분배의 논리는 잘못 되었다. 누군가가 부를 창출하지 않으면 분배할 수 없다>라는 것을 인식하고 창업을 결심 했다 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나는 인연이 있어 무루티와 소프트 개발의 합작회사를 시작 했다. 지금에서는 인도의 입지전의 인물에서 가장 존경 되어 지고 있는 경영자이다.
방가로루에는 <엘렉트로닉.시티>라고 하는 IT 산업이 집적한 곳이 있다. 내가 말레시아의 <마루치메디어.수퍼.코리도 계획>을 진행 하고 있을 때에 이곳에 시찰을 와서 무르티와도 이야기를 들은 결과 거의 같은 컨셉트 였다. <인도에도 나와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네>라고 깜짝 놀랐다.
여담이지만, 그때 창업 멤버의 한 사람으로 현 CEO인 난단.M.니레카니와 처음 만났었지만, 만나자 마자 <이 책은 나의 바이블이다>라고 말하고 내가 발간한 <企業 參謀> 책을 보여 주었다. 고마운 것이지만 인도에서는 16만부 이상이나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유통되고 있다 라고 한다.
무루티의 리더십과 엘레트로닉.시티라고 하는 場이 하나의 구심력이 되어 위프로.테크놀러지, HCL테크놀러지 등의 신흥 기업이 태두하고 또한 타타와 리라이안스 등의 인도 재벌도 여기에 참가해 왔다. ☞.<인도,약속의 땅인가? 아니면 위험지대인가?(3)>이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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