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모범이 된 인도(中)
일본경제연구센터
<環인도洋의 풍부한 역사>
놀라운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일반 통념상으로는 인도는 영국의 목화산업에 타격을 받고 착취되어 최빈곤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하지만,19세기말부터 20세기에 걸쳐 인도의 무역 수지를 보면 인도는 일관되게 흑자였다.
분명히 영국에 대해서는 對적자였지만,그것을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는 흑자를 중동,중국,동남아시아 지역으로부터 확보하고 대폭적인 흑자를 향수하고 있었다. 인도를 영국과의 관계만으로 빈곤화 했다 라고 보는 것은 단편적이다.
인도는 영국에 원료 목화를 수출하고 목화(綿)제품을 구입했기 때문에 인도의 국내 목화산업은 潰滅(궤멸)했다 라고 하는 통념이 있다. 그러나 간디가 反英 저항운동의 심볼로 한 쟈루카(물레)의 존재로부터 알려지고 있듯이 궤멸하고 있지 않다.
실은,19세기에 영국에 시장을 빼았겼던 것은 도시형 수공업에 의한 고급 목화제품만이고 인도 국내에 있어 구입자는 土侯(토후) 등 고소득층이었다. 그들은 영국 면직물로 바꾸었지만 대다수의 서민이 입고 있는 목화는 다시 수출 산업이 되고 있다.
11세기로부터 16세기경에 걸쳐서 유럽은 르네상스라고 하는 이슬람 문명에의 캐치 업 과정을 끝내고 17세기부터는 인도에의 캐치 업을 개시 했다. 산업혁명의 결과,大英帝國은 인도를 최대의 시장으로 하고 지배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는 인도가 영국의 융성을 지탱하고 영국이 대륙 유럽과 미국의 경제성장을 지탱하고 있었다. 인도는 구미의 경제 근대화의 기초이다.
<동방.인도로부터의 빛이 세계를 계속해서 매료시켜 나간다>
인도는 영국에 산업혁명을 야기시킬 정도의 중대한 영향을 주었지만,영국도 인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종주국 영국의 유산으로서 철도 등의 인프라는 민족자본이 계속하여 현대 인도 경제에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이 초래한 최대의 영향은 하드 측면보다도 소프트한 면이고 그것은 영어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여 학교 교육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영어 이외에 18개나 되는 공용어가 존재하는 다양한 인도가 최초로 문화적 통을 달성 했다.
인도는 독립 후는 사회주의 자유경제에로 기어를 체인지 했다. 그 때에 영어가 크고 할 말은 하는 정보산업에 着目 했다.현재의 인도는 IT인재의 공급국이다. IT에 영어는 필수이다. 그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점에서 인도는 다른 아시아 제국보다도 압도적 우위에 서 있다. 美英은 말할 것도 없고 EU권의 공통어도 영어가 되어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인도가 歐美圈을 축으로 성장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BRICs제국(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의 급성장이 주목 되고 있지만,그 성장의 기축은 각국에서 다르고 그 중에서도 인도의 특이함은 두드러져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이란 성장의 방법이 크게 다르다.
인도와 유럽과의 관계에 필적 하는 것은 중국에 있어서는 일본이다. 유럽이 인도와 관련하는 16~17세기는 일본은 중국을 축으로 한 <環시나해 교역권>으로 왕성하게 무역을 했던 시기였다. 戰國,에도시대,면직물,도자기,비단을 비롯한 중국 문물이 대량으로 일본에 들어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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