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커와 경영학(下)
<分析의 中心에 人間의 存在>
초기의 著作인 <經濟人의 終末>과 <産業人의 未來>는 政治學的 色彩가 강하다. 그러나, 드러커는 정치학의 틀 속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專門 分化한 개별의 학문 체계에서는 한계가 있는 것을 파악 하고 있었다. 드러커의 업적은 경영학의 분야에 있어서 이야기 되어지는 것이 많지만, 다시 한번 그의 著作을 다른 각도에서 읽으면 그의 날카로운 분석은 歷史學의 智識과 政治學의 槪念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政治는 人間과 經濟를 <公共善>을 향하여 總合하는 것이었고, 經營學은 본래 政治에 가깝다.
사회과학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인간은 의도와 가치관을 갖고, 그 실현을 향해서 사색하고, 예측하고, 행동하고, 수정하여 환경의 영향을 받아 가면서 환경을 변화시켜 가는 能動的이고 反省的인 存在 이다. 이와 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政治學에서는 <分析> 능력만이 아닌 文脈(狀況)을 洞察 하는 <直觀>의 능력이 중시 되고, 다양한 학문의 성과를 應用 하는 것이 요구 되어진다. 또한 과학적으로 일반 법칙을 이끌어 내는 것은 상당히 곤란 하다. 객관성을 중시한 분석 어프로치에 편중 하면 인간의 철학과 가치관, 예술 등 측면은 배제 되어 현실로부터 격리할 가능성이 있다. 드러커가 탁월 했던 것은 사회 현상의 분석에 있어서 이 <分析>과 <直觀>의 밸런스가 갖추어져 있던 점이다.
드러커는 매너지먼트는 實務이지, 唯一 絶對는 아니며, <價値>는 의료와 마찬가지로 과학성에 의한 것이 아니고 환자의 회복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新版[企業이란 무엇인가?])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經營의 科學性에 자신을 갖고 있던 GM은 드러커의 思考(생각)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
<日本企業에 지대한 影響>
묵살한 GM과는 대조적으로 일본 기업은 지대한 영향을 받아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 드러커는 일본이 고도 성장기에 들기 전에 經濟人과의 교류와 현장 체험으로부터 경제 대국이 되는 것을 예견 했을 뿐만이 아니고 품질 관리의 전문가인 데밍구, 듀란과 함께 일본 기업의 경영 개선에 크게 공헌 했다. 이것은 일본의 역사와 문화가 文脈 의존이고 <感覺的>인 것과 무관치 않다. 특이한 특성을 갖은 일본 사회와의 만남에 의해 드러커의 發想도 촉발 되어진 것이다.
<포스트 자본주의 사회>의 <일본어版의 序文>에서 <本書는 아마 어떤 다른 나라,다른 독자 보다도 일본과 일본인에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여러가지면에서 日本은 本書가 논하고 있는 중심적인 변화의 하나인 智識 社會에의 移行에 관해서 가장 잘 준비가 되어져 있다> 라고 일본이 전환기를 극복 하여 새로운 사회로 발전하는 것에 대한 기대를 썼다.
드러커는 기업도 포함하여 모든 조직은 사회적인 공헌이 그 존재 의의인 것을 일관해서 주장 하고 있다. 그것을 위해 기업에 있어서는 이윤 동기가 아닌 企業의 倫理性,價値觀의 중요성을 지적해 왔다. 조직의 가치관과 개인의 가치관이 일치 했을 때에 인간은 일하는 즐거움,사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이미 1946년에 기업은 단순한 법인이 아닌 公共的 共同體의 성격을 갖으며, 기업의 주주는 이해관계자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도 말하고 있다([기업이란 무엇인가?]). 최근의 기업 윤리의 결여와 시장 원리를 우선하는 M&A(기업의 인수.합병)의 융성은 기업을 사회적이고 영속적인 존재로 여기는 드러커의 견해와는 대립하는 면이 있다. 우리들은 市場原理主義者와 效率 우선의 經營者가 설쳐 대는 상황을 容認하는 것이 아니고, 經營의 本質이란 무엇인가? 를 다시 한번 自問 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의 經營學은 物理學化를 志向한 經濟學을 模倣하고, 狹義의 實證主義로 치닫는가? 개념 없는 How To(방법 또는 기술)의 氾濫을 낳고 있는 중이다. 드러커의 업적을 회상해 보면 社會 科學은 科學을 志向하는 한편으로 哲學,價値觀,審美眼,藝術 등 요소를 경시해서는 안 되는 것은 명확 하다. 이 기회에 우리들은 <무엇이고>, <將來는 어떻게 될 것 인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고 하는 社會 科學 本來의 물음을 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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