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다이아몬드 별책/07-110] 서양의 모범이 된 인도(下)

Date 07/11/2007   Hits 25482

서양의 모범이 된 인도(下) - 일본경제연구센터

일본은 중국 제품을 대량으로 구입하고 그 대금으로 金銀銅을 지불하여 큰 폭의 적자였지만 에도시대 중기,歐美의 産業革命(Industry Revolution)에 대해서 <勤勉革命(Industrious Revolution)이라고 불리우는 생산혁명이 일어났다. 이것으로 명주,목화제품,사탕,도자기를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게 되어 위기를 벗어났다.
영국이 인도을 캐치 업 한 것처럼 일본은 중국을 캐치 업 했다. 얼마 안 있어 일본이쇄국을 풀고 대외 무역을 재개하자 일본 제품은 중국 제품을 상회하여 제1차 세계대전까지는 중국을 최대의 시장으로 했다. 그것은 영국 제품이 인도를 최대의 시장으로 한 것과 비숫한 관계이다.
정치적으로는 반목하고도 경제적으로는 인도와 영국의 관계가 상호보완인 것과 같이 중국과일 본과의 경제관계도 상호보완적이다. 아무리 중국인이 일본 국내에서 商賣를 성공 시켜도 그것에 의해 일본은 적대적 관계가 되었던 적이 없다. 製造의 일본과 商賣(장사)의 중국,현대에 있어서는 금융비즈니스의 중국과 최첨단기술의 일본 이라고 하는 것처럼 경쟁을 피하고 각각의 영역에서 잘 공존해 왔다.
인도와 중국과의 관계는 국경 분쟁은 있지만,경제적 경쟁은 심각하지 않다. 인도에는華僑가 있다. 華僑는 환시나海,印僑는 環인도에서 활약한다. 중국 茶와 인도 홍차가 경쟁하지 않는 것처럼 서로 진출분야를 피하여 각각의 영역에서 공존해 왔다. 무엇보다도 양국의 경제발전의 형태가 크게 달라 있다.
중국의 경제성장의 기반은 값싼 노동력과 방대한 소비인구일 것이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자본이 집중하여 노동집약적 산업으로부터 갑자기 강해졌다. 그 결과,제1차->제2차->제3차 산업 이라고 하는 것처럼 산업구조가 맹렬한 스피드로 고도화 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이 걸어온 길이다.
그것에 비해 인도의 경제발전은 한번에 제3차 산업의 최첨단인 IT산업의 소프트웨어의분야가 돌출하여 지식집약적 산업을 성장 시켰다.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던 것으로 영어를 익힌 것을 무기로 인도는 英美.EU圈과 비즈니스상의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하고 신속하게 행할 수 있는 전략으로 歐美를 고객으로 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보면 인도는 역사상 한번도 궤멸한 적이 없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산업혁명이지난 후에도 인도 織物工의 좋은 솜씨에 영국의 최신식의 방적기계도 이루어내지 못했다. 1851년에 런던에서의 만국박람회에서 인도 手織工이 짠 모스린(Muslin)과 영국의 최고 방직기가 짠 모스린이 비교 전시 되었지만 품질은 인도製 쪽이 높았다 라고 하는 기록 되어져 있다. 이전 인도는 수공업의 예술적인 스킬로 유럽을 매료 시켰지만,현대에서는 영어를 구사하는 소프트웨어의 지적산업으로 歐美 세계를 매료 시키고 있는 것이다.
회고해 보면,일본과 歐美의 근대문명의 역사는 겨우 200년에 지나지 않는다. 2,000년의 시간 길이로 보면 인도와 중국은 물심양면에서 주변국에 영향을 주는 문명국 이었다. 특히 인도는 일본에게 있어서는 心(불교)의 고향과 영국인에 있어서는 物(목화)의 고향으로 동양문명과 서양문명이 혼재하는 다양성을 갖고 있다. 동양과 서양과를 함께 품고 있는 인도는 전쟁에 대해서는 <비폭력>이라고 하는 새로운 가치를 인류에 제공해 왔다. 인도는 세계를 견인할 수 있는 불가사의한 흡입력을 무한으로 간직하고 있다.
인도의 역사를 멀리 조망해 보면 계절풍이 닥쳐왔을 때에 인도 대지의 白花가 일제히흐드러지게 피지만 그와 같은 풍부한 자연과 그것이 자란 다양한 문화의 진수를 모두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인도는 아직도 아득하니 풍요로운 가능성의 국가로 계속 존재하고 있다.